[중간리뷰]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8. 드디어 시작된 연합국의 공세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A.J.P 테일러 지음/유영수 옮김
페이퍼로드 폄/ 430쪽
아프리카-지중해 전선
사막의 여우 '롬멜'의 패배
연합군의 횃불작전(아프리카 서북부 상륙작전)으로 인해 지중해재해권이 연합군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어 아프리카 중부에 주둔하고 있던 독일군이 보급로가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런 와중에 롬멜은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차 독일로 귀국하게 되고 그때 영국 제8군 몽고메리의 반격이 시작된다.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독일군의 기를 완전히 꺾어버린 것이다.
롬멜이 다시 아프리카 전선으로 돌아왔을때는 이미 승기가 연합군측으로 넘어간 후였다.
어려운 전선상황에서 새로부임한 사령관 아르님과 의견마찰이 잦았으며 롬멜은 아르님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아프리카를 떠나고 롬멜이 떠난 아프리카에 연합군의 공세는 더욱 거세지고 결국 1943년 5월13일 아르님과 이탈리아원수 조반니 메세는 연합군에 항복하고 만다.
지중해와 이탈리아
연합군의 횃불작전은 여러가지로 의미가 크다. 물론, 상륙지점인 북아프리카에서의 교두보 확보와 롬멜군단을 몰아낸것도 큰 의미지만, 무엇보다도 지중해 재해권의 확보에 있어서 가장 큰 요소로 작용했던것이다.
1943년 5월 북아프리카에서 항복을 받아낸 다음 즉시 이어서 시실리아섬을 경유한 이탈리아 본토진격작전을 구상할수 있었다. 같은해 7월10일 감행된 시실리아 상륙작전에서 그동안 지중해에 '황금알박기'를 유지하고 있던 '몰타'섬이 그 교두보노릇을 톡톡히 한것은 또다른 잇점이었다.
동부전선에서 판세를 전환시킨 성채작전
스탈린그라드공방에서 실패한 독일군은 일단 어느정도 후퇴하여 전선을 재정비 하였으며, 전선이 재정비되는 과정에서도 공방전은 이어졌으며, 그 끝에 기이한 모형의 전선이 굳어진다. 소련측의 돌출부가 형성된것이며, 그 튀어나온 부분의 중심에 '쿠르스크'라는 전략적 요충지가 있었다.
독일은 육군총감 구데리안을 중심으로 돌출부를 위.아래 양측에서 공격하여 포위 섬멸하는 이른바 '성채작전'을 구상하여 전선을 유리한 방향으로 선회시키고자 하였고 소련의 지휘부는 이러한 독일의 쿠르스크로의 침공을 예상하고 있었다. 소련은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전자생산에 전력을 가하고 뜻하지 않은 히틀러의 4개월간의 공격연기에 시간을 벌어 더욱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할수가 있었다.
위.아래 양측에서 공격에 들어간 독일군은 소련군의 필사적인 방어선을 뚫지 못했으며 피아간 막대한 인명과 물자 손실만 초래하였다. 그러던 중 아프리카전선에서 이탈리아가 패했으며 곧이어 이탈리아 본토로 연합군의 상륙이 예상되자 히틀러는 정예 기갑전력을 이탈리아를 구하기 위해서 이동시킴으로서 성채작전은 상처만 남기고 취소되고, 병력은 다시 원래방어선으로 이동하게 된다.
성채작전의 실패로, 작전중 인명과 기갑전력의 손실은 물론이고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즉각즉각 보충되는 소련의 인력과 보급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되어 이후 전술에 크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일본군 야마모토제독의 죽음
러시아와 지중해에서 상황이 매우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동안 극동의 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된 것처럼 보였다. 버마에서 영국은 원정작전을 펼쳤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상호간 보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은 이듬해에 있을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공격에 대항해 방어선을 구축하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43년 4월 미국의 통신 감청부서로부터 일본군 전략의 천재였던 야마모토 제독이 시찰차 태평양으로 날아가고 있다는 첩보를 접수하였고 미국은 야마모토가 탄 비행기를 추적. 격추 하였다.